프랑스 브랜드 & 디자이너

04. 벨 에포크 시대를 아시나요?

Insight_M 2025. 7. 31. 15:37

 

안녕하세요. 모드인사이트입니다. 오늘은 벨 에포크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프랑스 근대패션의 태동과 관련된 중요한 시대와 디자이너들을 잘 파악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벨 에포크는 프랑스 근대패션 디자이너그들의 패션을 이해하는 사회적 환경이에요. 그럼 본격적으로 벨 에포크시대로 함께 가보실까요?

 

1. 벨 에포크는 아름다운시대인가?

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유럽은 기술, 예술, 문화가 눈부시게 발전한 시기를 맞이합니다.

 

프랑스에서는 이 시대를 '벨 에포크(Belle Époque, 아름다운 시대)'라고 불렀습니다. 유럽의 중세시대는 엄격한 신분제 사회로 혈통의 우월함이 계급으로 구분되는 사회였죠. 사치품은 신성한 신분인, 귀족만의 전유물이었는데 프랑스대혁명 이후 특권 계급인 귀족은 사라지게 되지만, 귀족적 생활양식은 오히려 더 광범위한 사회집단으로 확대됩니다.

 

새롭게 등장한 사회집단이 바로 상업으로 부를 축적한 상류층 부르주아 계급이에요. 한국 역사에서 조선시대 이후 대한제국 시대와 이 시기 부를 축적하여 신분상승을 이룬 부유한 상인층들을 생각해보시면 이해가 쉬워요.

 

2. ‘사치의 대중화’(la démocratisation du luxe): 부유한 중산층의 대두

19세기 후반 프랑스 파리는 근대적 건축과 철도 건설, 산업으로 급속한 도시화와 이뤄지며 파리 도시인구가 증가하게 되요. 이에 따라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직업과 소비 여력을 갖춘 경제활동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게 됩니다. 중세 귀족들의 생활을 동경하던 부유한 중산층이 사치소비에 진입하며 시작된 사치의 대중화’(la démocratisation du luxe)근대 프랑스 패션 산업의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급변하는 사회제도의 변화라는 문화적 진공 상황에서 부유한 중산층에게 귀족문화는 자신들 소비의 모델이 됩니다.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은 이러한 모방에 기초한 사치적인 소비를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라고 했어요. 사회의 최상류층이 하위계층 구성원들과의 구별짓기를 위해 행하는 사치적 소비를 의미하는 것이죠. 부유한 중산층의 이러한 소비문화는 파리 사회계층 전반으로 확산되게 됩니다.

 

3. 파리 사교계와 럭셔리의 극대화와 패션

당시의 부르주아 여성들은 사교계에서의 연회와 무도회, 오페라 관람은 패션을 뽐내는 전시장이었습니다. 럭셔리한 드레스와 장신구, 깃털과 모피가 필수 요소로 여겨졌습니다.

 

이런 사교계에 가기 위해서는 치장, 즉 드레스 업을 중요시했습니다. 벨 에포크의 패션은 바로 이들 여성들의 우아함과 과시의 미학이 지배한 시대였으며, 고전적 아름다움과 화려함이 어우러졌습니다.

 

4. 도시의 여유와 소비의 시작

벨 에포크 시대는 근대 도시 문화가 꽃피운 시대이기도 합니다. 전차와 전깃불, 백화점과 카페, 오페라와 무도회

여성들은 이제 도시 공간을 누비며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시대를 살기 시작했죠. 이러한 변화는 여성 패션의 다양화로 이어졌습니다.

 

패션은 단순한 신체보호라는 기능을 넘어서 부유층의 상징, 여성들의 경제적 능력을 표현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디자이너들은 이를 민감하게 감지해 변화에 반응하였습니다. 평화와 번영이 지속되던 이 시기, 파리는 단순한 수도를 넘어 세계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고, 그 중심에는 디자이너들과 패션이 있었습니다.

 

5. 파리도시 백화점의 출현

19세기 후반부 파리는 은행을 통한 근대적 금융거래의 시작, 근대적 교통체계 구축, 인구증가라는 변화는 상업발전이라는 배경이 됩니다.

 

이와 같은 변화의 길목에서 백화점이라는 근대 상업시설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들 백화점들은 새로운 상업전략들을 무기로 새로운 소비문화에서 기인하는 사치의 대중화를 이끄는 중심 매개체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봉마르셰(Bon Marché, 1852)와 루브르백화점(Grand Magasins du Louvre, 1855), 프랭탕(Printemps, 1865) 그리고 바자르드로텔드빌(Bazar de l’Hôtel de Ville, BHV, 1856), 사마리텐(Samaritaine, 1869) 등의 초기 백화점들은 19세기 중반에 진행된 변화를 토대로 등장하게됩니다. 백화점들은 처음에는 직물과 의복류만을 판매했지만 1900년대에 이르면 사실상 모든 상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됩니다.

 

6. 패션의 문화적 토양이 되다

벨 에포크는 단지 화려한 시기만은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경제적 안정, 예술의 르네상스, 사회의 진보적 흐름은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감각과 예술성을 실험할 수 있는 풍토를 제공했습니다.

 

샤를 프레드릭 워스, 샤넬, 포아레, 비오네와 같은 디자이너들은 바로 이 시대의 문화 속에서 자신만의 미학과 언어를 구축했습니다. 벨 에포크는 프랑스 패션이 세계로 확장되는 데 있어 문화적 뿌리이자 발화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다가오며 벨 에포크는 서서히 막을 내립니다. 그리고 20세기 초반, 한 젊은 여성이 등장합니다. 그녀는 화려함과 코르셋을 거부하고, 단순함과 실용성을 무기로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하게 됩니다. 다음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참고 글: https://modeinsight.tistory.com/23).

 

Written by Insight_M | 모드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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